회사에 볼 일 있어 잠깐 들렸다가 지하철 타고 오후 8시에 시청역 도착. 사람들 꽤 많이 내리더군요.
엄마에 안겨있던 둘째(딸)가 지하철에서 하도 징징대서 주위 분들에게 많이 죄송했습니다. 아들녀석은 뛰어가다 바닥에 엎어져 있군요-_-; 역 안에서 어디로 나갈지 몰라 우왕좌왕 하다, 그냥 위로 올라가면 사람들 있겠지 해서 몇번 출구인지 기억도 안 나는 곳으로 올라 갔습니다.
올라가니 벌써 많은 인파가 가득 메우고 있어서 광장 안에는 들어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촛불시위 초반에는 중,고등생들이 많았다는데, 오늘 가보니 연령대가 상당히 높아져 있더라구요. 2004년 노통 탄핵반대 시위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고, 오히려 연령대가 좀 더 높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처럼 어린 애 둘을 데리고 간 부부는 흔치 않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요. 여기저기서 보이는 유모차, 무등에 탄 아이들, 아빠 손 잡고 같이 시위 구호 외치는 초등생, 중학생들..
저 멀리서 부산대학교 깃발도 보일 정도로 대학생들도 많이 조직화되어 참여한 것도 좋았습니다만, 이명박 정부에 실망하여 가족 단위로 참여한 시위자들이 많이 보여 뿌듯했습니다. 대체 이젠 '배후세력'을 뭐라고 몰아붙일지 궁금해지더라구요. 아고라가 각 가정을 선동했다고 할려나?
아무튼 멀리서라도 같이 구호 외치고 참여하고 싶었는데 둘째가 이 상황이 어색한지 계속 칭얼대서.. 저는 아이 안고 '뽀로로' 주제곡을 불러주면서 촛불을 높이 치켜 들었던.. 저에겐 그런 촛불시위였습니다-_-;
8시 30분 좀 넘으니 슬슬 광장이 비면서 사람들이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동자나 선발대가 어디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에 각자의 의지로 움직이는 시위자들. 네 가족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우선 청계천을 향했는데 그곳에서 가두 시위대를 만나게 되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폰카라 많이 흔들렸습니다만, 가두시위도 가족 단위로 소규모 그룹 단위로 각자의 구호를 외치면서 저마다의 촛불을 들고 진행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딱 '장삼이사' 였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아줌마, 젊은 청년, 학생, 유모차, 소수의 어르신(노인)들까지. 모두가 하나되어 취임 100일도 안된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부르짖었습니다.
작은 '민주 시민'들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주권. 오랜만에 뿌듯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고, 다섯 살 아들에게도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보여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애들이 지쳐서 시위대를 뒤로 하고 밤 10시 넘어 택시 타고 집에 오게 됐네요. 와서 바로 뉴스를 보니 물대포를 쏘면서 진압한다고 하질 않나, 촛불시위 항쟁에 대한 해결책으로 장관 셋을 짜르는 걸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질 않나..
정신차릴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다음 대규모 촛불시위는 6월 10일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한나라당이 정신 번쩍 차리도록, 정신 못 차릴 것 같으면 물러나게 하도록 또 한번 나서야겠습니다. 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머릿수 보태기 위해 출동해야죠. (이렇게 쓰면 제가 선동한거라 배후세력이 되는 건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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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ㅎㅎ
그런데 6월 10일...무슨 의미가 있는건가요? 어서 들었는데 또 까먹었네요;;;
10만이 20만 50만 100만이 된다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일으킬수 있을까요?
6월 10일은 21년 전에 있었던 6월 항쟁 기념일입니다. 위키 설명 붙일께요~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으로 불린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를 골자로 한 기존 헌법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조치와, 경찰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부상당한 사건 등이 원인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 선언으로 마무리되어,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2007년 6월 10일 정부 차원의 첫 기념식이 열렸다.
멋지십니당 ~
멋지긴 -_-;
배후세력 찾았습니다. 청수형!~ 이놈 잡아가세요!!
형 -_-;;;;ㅋㅋ